국수주의와 제국주의는 근현대 역사에서 인류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긴 사상과 정책입니다. 국수주의는 자기 나라의 고유한 역사, 전통, 정치, 문화만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믿고 다른 나라나 민족을 배척하는 극단적인 태도를 의미하며, 제국주의는 특정 국가가 다른 나라나 지역을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정책과 사상을 가리킵니다. 두 개념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국수주의는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침략과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했습니다. 20세기 세계대전의 참상과 식민지배의 고통은 바로 이러한 극단적 사상과 정책의 결과였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국수주의와 제국주의의 영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수주의의 정의와 개념
국수주의의 사전적 의미
국수주의(國粹主義)는 영어로 울트라내셔널리즘(Ultranationalism) 또는 초국가주의로 번역되며, 전체주의적이고 급진적인 민족주의를 의미합니다. 사전적 정의는 자기 나라의 고유한 역사, 전통, 정치, 문화만을 가장 뛰어난 것으로 믿고 다른 나라나 민족을 배척하는 극단적인 태도나 경향을 가리킵니다. 국수주의는 애국심을 가장해 개인의 이익과 민족집단의 이익이 충돌할 때 민족집단의 이익만을 우선 선택하도록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국수(國粹)의 본래 의미
국수주의에서 '국수(國粹)'라는 말은 별개의 명사로서 존재하는데, '한 나라나 민족이 지닌 고유한 정신적, 물질적인 장점'이라고 정의됩니다. 여기서 '粹(수)'는 '순수'할 때의 그 '수'입니다. 즉 과도한 애국심으로 국수주의에 빠지게 되면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지, 국수 자체로 부정적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닙니다. 국수란 본래 '그 나라에 역사적으로 전래하는 풍속, 습관, 법률, 제도 등의 정신'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자문화중심주의와의 관계
국수주의는 자문화중심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자문화중심주의는 자기 문화를 기준으로 타 문화를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태도인데, 이것이 극단화되면 국수주의로 발전합니다. 국수주의는 자문화중심주의가 국가와 민족 차원으로 확대되고 배타성이 극대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수주의는 단순히 문화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군사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국수주의의 역사적 배경
한국에서의 국수주의 개념 형성
한국에서 국수라는 말은 신채호의 '국수보전론(國粹保全論)'에서 시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채호는 한말부터 이미 국수의 보전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실력양성에 앞서 국가정신의 무장을 강조하고, 정신무장의 요체는 국수의 보전에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이같은 국수보전론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크게 확산되면서 국수의 상징으로 특히 단군숭배의 풍조가 일어나 대종교가 창건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국수보전론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정신을 지키려는 저항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일본의 국수주의 발전
일본에서 '국수주의'(国粋主義)라는 단어는 주로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급진적인 서양화 옹호 사상인 구화주의(欧化主義)에 대항한 개념으로써, 자국의 동양적 문화전통을 지키려는 사상 전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일본의 국수주의는 점차 변질되어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국수주의적 의식은 정치적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급격한 확장과 민족주의 확립에 힘입어 발생하였으며, 다시 이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1905년 일본의 고유 민족주의는 사실상 제국주의로 분류될 수 있었으며, 영토 확장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풍토를 정착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근대 민족주의와의 연관성
국수주의는 근대 내셔널리즘(nationalism)과 맥락은 같으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민족주의에 비해서도 '민족의 문화', '국가의 주권', 그리고 외세에 대한 배척과 방어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근대 내셔널리즘의 네이션(nation)을 일본 제국은 국가(國家) 혹은 민족(民族)이라고 번역했고 이러한 번역을 대한제국이 들여오면서 현대 내셔널리즘을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국수주의는 이러한 민족주의가 극단화된 형태로, 사실상 '강경파 민족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수주의의 특징과 구체적 사례
국수주의의 주요 특징
국수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타민족, 타국가에 대한 극도의 배타성과 초월적 성격입니다. 국수주의자들은 자기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다고 믿으며, 이를 토대로 타민족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합니다. 또한 외부 문화에 대한 경멸과 국가에 대한 과도한 충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합니다. 국수주의는 종종 팽창주의적 외교정책으로 나타나며,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다른 민족에 강제로 적용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국수주의가 지배적인 국가들은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자유로운 문화나 사상 교류가 차단되어 내적 역동성을 상실함은 물론, 대외적으로는 주변국을 향해 불필요한 적대감을 증폭시켜 작게는 증오범죄나 국민감정 악화에서 크게는 전쟁까지 이런저런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사적 사례: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국수주의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는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을 들 수 있습니다. 나치 독일은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소수 민족인 유대인을 박해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시기에도 자국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이웃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은 국수주의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자국 내의 결집력을 강화하고, 아울러 외세 배척을 타국에 대한 침략적 성향으로 전환하기 쉬우므로 독일 나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제국 등의 군국주의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국수주의 현상
현대 사회에서도 국수주의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 왜곡, 영토 분쟁에서의 근거 없는 주장, 전쟁범죄 부인 등이 그 예입니다. 또한 혈통을 중시하여 혼혈인을 배척하거나 외래종교를 통제하고 자국의 전통종교를 성장시키려는 움직임도 국수주의의 표현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국수주의는 글로벌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며, 다문화 사회에서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정의와 개념
제국주의의 기본 개념
제국주의(帝國主義, Imperialism)는 특정 국가가 다른 나라, 지역, 식민지 등을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정책, 또는 그러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을 가리킵니다. 제국주의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imperator(황제), imperium(제국)인데,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3세의 로마제국 재현(再現)의 시도를 제국주의라 하였습니다. 제국주의란 말이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1877년 러시아가 이스탄불을 점령하려고 하였을 때 영국의 총리 B.디즈레일리가 무력행사에 의한 강경정책을 취하여 이른바 징고이즘(jingoism)이 생겨난 이후부터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했습니다. 인류사에서 국가가 등장한 이래 제국주의가 늘 있었다는 관점을 거부하고, 제국주의를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난 150년 사이에 등장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단지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로 보는 견해를 거부하고,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특정한 발전 단계로 파악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 정의의 핵심은, 오랜 기간에 걸쳐, 보다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로 보다 뒤쳐진 반(半)식민지 나라의 잉여가치가 빨리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와 사회 진화론을 사상적 배경으로 등장하였습니다. 민족주의가 인종주의 및 사회 진화론과 결합하며, 백인은 유색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극단적인 형태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는 식민지를 확대하여 대제국을 형성하려는 민족 감정을 고조시켰습니다. 제국주의시대 서구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의 폭력과 착취에 대해 후진국을 식민지화시켜 발전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하였습니다.
제국주의의 발전 단계와 특징
레닌의 제국주의 5대 특징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1916)에서 제국주의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생산과 자본의 집적이 고도의 단계에 달해, 경제 생활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독점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둘째, 은행 자본이 산업 자본과 융합하여 '금융 자본'을 이루고, 이를 기초로 하여 금융과두제가 형성됩니다. 셋째,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수출이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됩니다. 넷째, 세계를 분할하는 국제적 독점자본가 단체들이 형성됩니다. 다섯째, 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됩니다.
제국주의의 역사적 발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1492년에 제국주의가 시작됐다고 보는 학자들은 15~18세기에 유럽이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한 것을 '중상주의적 제국주의'라 부르면서 산업혁명 이후의 제국주의와 구분합니다. 19세기 후반 군사력과 경제력을 내세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는 대외 팽창 정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국가가 된 나라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인 공급과잉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료 공급지와 상품 판매 시장을 확보하려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독점자본주의와 금융자본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반은 독점자본주의입니다. 자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윤을 계속 재투자하면서 덩치를 키우게 됐고, 약체 기업을 더 강하고 효율적인 기업이 집어삼켰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독점 기업(거대 기업)들이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됐습니다.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융합된 '금융자본'이 전례 없이 집중된 경제력을 구축했습니다. 이제 경쟁은 국가들 사이의 군사적, 지리적 형태를 띠기 시작했고, 독점 기업들과 연계를 맺은 국가들이 국익을 위해 해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애썼습니다.
제국주의의 역사적 사례와 영향
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 분할
동남아시아 지역은 17세기 초부터 향신료 무역 등을 이유로 중요히 여겨졌고, 19세기에는 아시아 침략의 거점이자 원료 공급지로서 서양 열강의 침략 대상이 되었습니다. 영국은 19세기 중엽 인도 대부분을 점령하고, 미얀마, 말레이 반도, 보르네오 북부를 차지하여 말레이 연방을 수립했습니다. 프랑스는 자국의 선교사가 피살된 사건을 구실로 베트남에 침략해 베트남을 차지하고, 캄보디아, 라오스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을 수립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삼고 향료 무역을 독점하였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1884년 베를린 회의는 아프리카 분할 원칙을 공식화하여 식민지 획득 경쟁을 과열시켰습니다. 먼저 실효적 지배를 한 국가에게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원칙이 결정되어 아프리카 쟁탈을 '합법화'했습니다. 영국은 이집트를 보호국으로 삼고 수에즈 운하를 차지하였으며, 남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영국은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Cape Town), 이집트의 카이로(Cairo), 인도의 콜카타(Calcutta)를 연결하는 종단정책(3C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거점으로 삼고, 동쪽의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진출하여, 아프리카를 동서로 연결하는 횡단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분할로 라이베리아와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전 지역이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제국주의가 남긴 피해와 유산
제국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시대 중 하나로, 그 유산은 현대 사회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콩고 자유국의 사례는 제국주의의 폭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를 자신의 사적 영토로 삼아 고무와 상아 채취를 주민들에게 강요했으며, 약 1,000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 강제 동원, 문화 말살, 토지 수탈을 자행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동아시아를 제국주의 국가들의 상품의 시장으로 만들어 동아시아의 전통적 생산구조를 파괴했으며,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동아시아 각국에서의 인명 피해는 대부분 전투와 무관한 민간인이었으며, 주로 일본군에 의한 학살, 가혹한 노동, 굶주림으로 사망했습니다.
국수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
국수주의의 제국주의로의 전환
국수주의와 제국주의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 국수주의가 제국주의로 변질되는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본은 내셔널리티(Nationality)를 '국수'라고 번역하면서, 국가주의를 창출해냈고 이 국가주의 논리에 침잠하게 되면서 그것으로부터의 탈맥락화를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자국 찬양 사상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손에 의해서 전국민들을 세뇌하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적인 근거도 되었습니다. 국수주의는 대내적으로 국민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침략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습니다.
파시즘과의 연관성
국수주의와 파시즘이 결합하면 쇼비니즘으로 발전합니다. 파시즘은 배타적인 생물학적,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정의된 민족을 모든 다른 충성심의 원천 위에 두려 하고 동원된 민족공동체를 창출하려는 이데올로기와 실천의 묶음입니다. 파시즘은 정치적 폭력, 제국주의, 전쟁을 포함한 국가적 폭력을 국가 재건의 수단으로 간주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국수주의가 극단화되어 제국주의와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파시스트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와 여성주의가 민족보다는 계급이나 성을 우선시한다고 간주하므로 그것들에 대해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동적입니다.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문화 제국주의로
자문화중심주의가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문화 제국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문화 제국주의는 특정한 국가의 문화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토대로 다른 문화를 파괴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문화중심주의의 장점인 구성원의 자긍심 향상과 내부 결속 강화는 긍정적이지만, 배타성이 극단화되면 국수주의로, 더 나아가 문화 제국주의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국수주의는 어느 나라에선 배척하는 방식으로, 어떤 나라에선 침략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국수주의와 제국주의의 문제점과 피해
국수주의의 폐해
국수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화적 폐쇄성과 배타성입니다. 국수주의가 지배적인 국가들은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자유로운 문화나 사상 교류가 차단되어 내적 역동성을 상실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주변국을 향해 불필요한 적대감을 증폭시켜 작게는 증오범죄나 국민감정 악화에서 크게는 전쟁까지 이런저런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도한 민족주의는 공동체를 대내적으로 단결시키는 긍정적인 측면과 동시에 '민족'의 과잉이 가져오는 대외 팽창, 그에 수반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침해라는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민족주의가 국수주의적이고 배타적 국제관계로 흐르면, 타자(일본)에 대한 적대성을 부각시키며 한민족을 순진한 피해자로 만드는 것에 끝나지 않고 어린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인지 갈등을 크게 합니다.
제국주의의 인적·물적 피해
제국주의 침략에 따른 피해는 경제적, 정치적, 인명 피해로 구분됩니다. 경제적으로는 동아시아를 제국주의 국가들의 상품의 시장으로 만들어 동아시아의 전통적 생산구조를 파괴했으며, 동아시아 국가의 광산, 철도 등 경제적 이권을 침탈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인명 피해는 대부분 전투와 무관한 민간인으로, 주로 일본군에 의한 학살, 가혹한 노동, 굶주림으로 사망했으며, 식민지와 점령지에서의 인적·물적 자원 수탈이 자행되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갈등으로 1994년에 약 80만 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는데, 이는 벨기에 식민 지배 시절 민족 분열 정책에서 비롯된 갈등이었습니다.
현대까지 이어지는 제국주의의 영향
제국주의가 저지른 강제적 디아스포라와 식민주의는 현대에도 구조적인 인종차별과 임금차별 같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영국의 후세인-맥마흔 서한과 밸푸어 선언은 현대까지 영국 제국주의의 가장 큰 정치적 실책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제국주의의 직접적인 영향이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제국주의적 정책으로 유대인 국가 설립을 지지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 갈등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현대 테러리즘의 뿌리 역시 제국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와 극복 방향
열린 민족주의로의 전환
국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닫힌 민족주의에서 열린 민족주의로 전환해야 합니다. 닫힌 민족주의는 다른 말로 '국수주의'라고 하여 지양해야 할 것이며,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민족주의는 역사 발전의 건전한 에너지이지만, 동시에 분란과 전쟁을 일삼는 파괴적 기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민족주의는 인종주의나 자민족중심주의의 형태로 변질되어 인류 역사에 재앙이 되었으며, 비이성적 국수주의는 결국 자기파멸의 길입니다. 민족주의는 대외적으로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자신들의 국민국가를 향유하게 했으며, 민주주의와 함께하는 열린 민족주의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다문화 사회에서의 공존
이미 한국은 다문화사회를 경험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다원주의는 이미 이 땅에 살고 있는 '일시적 이방인'이 어떻게 '순혈민족'으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강한 한국인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점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사회의 화합과 협력을 위해서 '일시적 이방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함을 인식해야합니다. 국수주의는 현실을 외면하며 오래된 과거의 영광에 기대는 것이고, 과거의 좋은 선례 역시 현실의 문제를 반추할 뿐 곧바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역사 인식의 균형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감정적 분노로 대처하기보다는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역사는 실체가 없는 대상으로, 누가 소유하고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그것을 이용하여 특정국가가 이익을 챙길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견제해야 할 것은 다른 국가의 배타적 민족주의지만 그것에 못지 않게 우리의 배타적 민족주의도 견제해야 할 것입니다. 열린 민족주의로서 역사를 바라볼 때 더욱 세계화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결론
국수주의와 제국주의는 근현대 역사에서 수많은 전쟁과 갈등, 인류의 고통을 초래한 극단적 사상과 정책이었습니다. 국수주의는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만을 최고로 믿고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극단적 태도이며, 제국주의는 군사적·경제적 수단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려는 정책입니다. 두 개념은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국수주의는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했습니다. 20세기 세계대전과 식민지배의 참상은 이러한 극단적 사상의 결과였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그 영향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건전한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유지하되, 극단적 국수주의와 제국주의적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열린 민족주의로의 전환, 다문화 사회에서의 공존,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통해 진정한 세계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구분 | 국수주의 | 제국주의 |
|---|---|---|
| 정의 | 자기 나라의 역사·전통·문화만을 최고로 믿고 타민족을 배척하는 극단적 태도 | 군사적·정치적·경제적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려는 정책과 사상 |
| 영어 표현 | Ultranationalism (초국가주의) | Imperialism |
| 사상적 기반 | 극단적 민족주의, 자문화중심주의 | 독점자본주의, 사회진화론, 민족주의 |
| 주요 특징 | 배타성, 자국 우월주의, 타문화 배척 | 식민지 확보, 자본수출, 영토 분할 |
| 역사적 사례 | 나치 독일, 일본 제국, 파시스트 이탈리아 | 19-20세기 유럽 열강의 아시아·아프리카 침략 |
| 주요 피해 | 전쟁 유발, 문화적 폐쇄성, 인권 침해 | 식민지배, 민간인 학살, 자원 수탈 |
| 현대적 영향 | 혐오범죄, 국민감정 악화, 다문화 갈등 | 인종차별, 지역분쟁, 경제적 불평등 |
| 극복 방향 | 열린 민족주의, 문화상대주의 | 국제주의, 평화공존, 민족자결 존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