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현대 한국 사회에서 "기러기 아빠"라는 용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선 표현이 아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자녀를 해외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경제적 뒷바라지를 하는 아버지들을 일컫는 이 신조어는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과 함께 등장했다. 평소에는 한국에 머물며 돈을 벌다가 일 년에 한두 번씩 가족이 있는 외국으로 날아간다는 점에서 철새인 기러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 현상은 단순한 가족 형태의 변화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조기 교육, 입시 경쟁, 과도한 교육열, 영어 숭배, 양극화에 따른 계층 재생산 등 다양한 차원의 복합적 사회 현상을 반영한다. 본 글에서는 기러기 아빠 현상의 배경과 실태, 그리고 이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기러기 아빠 현상의 배경과 역사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의 시작
기러기 아빠 현상은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면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등으로 인해 해외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폐쇄적인 분위기였지만, 글로벌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시선을 국내에서 국외로 돌려야 한다는 열풍이 불었다.
1997년 IMF 사태가 발생하면서 모든 경제적 시스템이 해외, 특히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글로벌화는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 사교육 문제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국내에서 공부를 시킬 바에야 해외에서 교육을 시키겠다는 입장에서 조기유학 열풍이 불었다.
기러기 가족의 규모와 확산
기러기 아빠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여러 통계치를 통해 추정이 가능하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가구는 115만 가구에 달한다. 전체 결혼가구의 10%에 이르며, 이 가운데 절반인 50여만 가구가 '기러기 가구'로 추정된다.
교육부가 조사한 조기 유학생 출국현황을 보면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평균 2만 2천여 가구씩 새로운 기러기 가족이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998년 1,562명이던 조기유학생이 2007년에는 총 2만 9,511명으로 전년도의 2만 400명에 비해 무려 44.6% 증가했다.
기러기 아빠의 사회적 계층 변화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의 확산
기러기 아빠는 처음에는 고소득층에 국한되었다. 실제로 2000년 통계에 따르면 기러기 아빠의 주요 직업군은 40대 이상 의사, 교수, 대기업 임원 등이었다. 하지만 2006년 조사에서는 중산층이나 단순노무직 등 저소득층도 상당수 늘어났다.
기러기 아빠는 1990년대 중반부터 중산층 이상의 30~40대에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특수 계층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나타났지만 점차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저소득층은 자신의 수입에 비해 많은 돈을 송금해야 하기 때문에 빚을 많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양한 유형의 등장
기러기 아빠 현상이 확산되면서 재력과 형편에 따라 세분화된 신조어들이 생겨났다. 형편이 좋아서 언제든 외국으로 가족을 보러 갈 수 있는 '독수리 아빠', 여유가 없어 외로워도 국내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펭귄 아빠', 외국으로 보낼 형편이 안 되어 강남에 소형 오피스텔을 얻어 아내와 자식만 강남으로 보내는 '참새 아빠', 자녀를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대치동에 전세를 얻는 '대전(대치동 전세)동 아빠' 등이 그 예다.
기러기 아빠가 겪는 다양한 문제들
경제적 부담과 압박
기러기 아빠들은 외국에 나간 아내의 체제비와 생활비, 자식 교육비를 대느라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압박을 받는다. 매달 수백만 원씩 투입되는 유학비용 때문에 가정경제가 파탄하는 경우가 많다. 늘어나는 유학비용 부담에 사채를 쓰는 기러기 아빠도 있다.
기러기 아빠의 가장 큰 고통은 환율이다. 환율이 급상승하면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금리 인상과 함께 물가까지 상승하면서 기러기 아빠뿐만 아니라 자녀와 배우자의 해외 현지 생활 역시 힘든 생활을 해야 한다. 일 년에 공식으로는 3조 7천억 원이 들지만 비공식 통계로는 10조 원이 든다고 한다.
심리적 고통과 외로움
기러기 아빠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외로움을 비롯한 정신적 고통이다. 홀로 살면서부터 우울증이나 알코올 의존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게 된 아버지들이 꽤 많다. 한 의학자가 지난 2012년 기러기 아빠들을 대상으로 심리상태를 조사한 결과 기러기 아빠 10명 중 3명이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대학교 간호학과 차은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35~59세 기러기 아빠 1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8%가 영양불량에 시달리고 있으며, 조사대상의 29.8%는 "우울함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처음 기러기 아빠를 결심할 때는 '외로움'에 대해 간과할지 모르나,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운 외로운 생활은 심리상태를 많이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
건강상의 문제
기러기 아빠의 건강상태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혜민병원 내과센터팀의 조사에 의하면 병원을 찾은 기러기 아빠들을 대상으로 진료결과를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이 건강상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주로 가슴 쓰림, 가슴앓이, 속 쓰림, 식욕부진 등 기능성 소화불량과 과민성 대장증후군, 소화성궤양 등의 증세를 보여 기러기 아빠들의 건강관리가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평소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지내왔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식과 영양섭취 불균형 등으로 식사를 제때 규칙적으로 못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식당이나 메뉴만을 고집하다 보니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건강에 신경을 못 쓰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 의존과 일탈 행동
기러기 아빠들의 알코올 의존도가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07년 알코올전문병원 다사랑병원과 하이패밀리가 기러기 아빠 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24명)가 주 2~3회가량 음주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잦은 음주습관은 건강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돌연사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기러기 아빠들은 사건·사고에 휘말리기도 한다. 외로움에 지쳐 성매매업소를 전전하는가 하면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미성년자와 원조교제를 하기도 한다. 기러기 아빠들의 연령대가 40대 이상 중년이 대다수임을 감안할 때 원만한 성생활을 하지 못하는 기러기 아빠들은 남자들의 갱년기 증상과 연결되어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부부관계의 악화
기러기 아빠 현상은 부부관계 악화로 이어지기 쉽다. 장기간의 별거로 인해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지 못하고 대화가 단절되면서 애정이 식고, 부부 간 불신과 갈등이 심화된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 따르면 기러기 가정의 이혼율이 일반 가정보다 높다는 결과도 있다. 아내가 해외에서 독자적인 생활을 하며 남편의 존재감을 잊어버리거나, 아버지가 국내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일탈을 하는 등의 문제가 부부 갈등을 증폭시킨다.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자녀 또한 아버지의 부재로 정서적 결핍을 겪는다. 유학을 간 자녀들이 낯선 환경에서 정체성 혼란과 언어 장벽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고, 아버지의 부재가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장기간의 가족 해체 상태는 자녀의 가치관과 인간관계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해결 방안과 대안 모색
첫째, 국가 차원에서 과도한 교육열과 조기유학 의존 현상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교육 환경을 개선해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둘째, 기러기 아빠들의 정신건강과 사회적 관계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심리 상담, 모임, 자조 그룹 등을 활성화해 고립감을 줄여야 한다.
셋째, 기업 차원에서도 해외 파견 근무나 단기 연수 프로그램을 확대해 가족이 함께 해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기러기 아빠 현상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가정 내에서는 가족 간의 정기적인 만남과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온라인 화상통화, 주기적인 방문, 감정 공유를 통해 물리적 거리를 최소화해야 한다.
결론
기러기 아빠 현상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낳은 산물이다. 글로벌화, 교육열,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가족 해체 등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인 것이다. 기러기 아빠들이 겪는 고통은 한국 사회의 그늘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구조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육제도의 개혁, 사회 안전망 확충, 가족 친화적 문화 조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가족이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