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체와 편년체의 개념과 의미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두 가지 서술 방식이 바로 기전체와 편년체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은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록하느냐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기전체는 '기(紀)'와 '전(傳)'이라는 한자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반면 편년체는 '편년(編年)', 즉 연도를 엮는다는 의미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월·일 순서대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기전체의 탄생과 발전
기전체는 중국 전한 시대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마천은 상고시대의 오제로부터 한나라 무제 시대까지 약 2천여 년 간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전혀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창안했습니다.
사마천이 기전체를 고안한 이유는 중국사의 시조부터 시작하는 계통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편년체나 국별체로는 자신이 나타내려는 뜻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109년에서 기원전 91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기》는 황제들의 사적인 본기가 중심이 되어 표·서·세가·열전의 내용까지 규정짓는 독특한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사기》의 구성을 살펴보면 기전체의 특징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총 130편으로 구성된 《사기》는 본기 12권, 표 10권, 서 8권, 세가 30권, 열전 70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본기와 열전만 있으면 기전체의 기본 요건은 갖추게 됩니다.
본기는 제왕의 연대기로서 황제의 업적과 정치, 행적을 중심으로 역대 왕조의 변천을 연대순으로 서술한 부분입니다. 세가는 제후국의 역사, 특히 왕의 전기를 기록한 부분으로 역시 편년체로 기록되었습니다. 표는 연표 형식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간략하게 기록한 부분입니다. 서는 다양한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대한 내용을 서술한 부분으로 주로 제도, 문화, 지리, 경제, 사상 등을 다룹니다. 열전은 인물의 전기나 이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부분으로, 특정한 인물 또는 이민족에 대해 종합적으로 서술됩니다.
사마천의 《사기》 이후 기전체는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를 서술하는 기본 체재가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사기》, 《한서》 등 25사가 기전체로 편찬된 정사입니다. 기전체로 편찬된 역사서를 정사라고 부르기 때문에 기전체를 정사체라고도 합니다.
편년체의 기원과 특징
편년체는 기전체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 서술 방식입니다. 현전하는 편년체 사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공자가 노나라의 역사를 쓴 《춘추》입니다. 《춘추》는 중국 최초의 편년체 역사서이며, 노나라 은공 1년(기원전 722년)에서 애공 14년(기원전 481년)에 이르는 12공 242년 동안의 일들을 약 1만 6500자로 기록했습니다.
《춘추》는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어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전국시대의 공양고, 곡량적, 좌구명 등은 전(傳), 즉 해석서를 지어 원뜻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했습니다. 특히 좌구명이 지은 《춘추좌씨전》은 기록된 사실과 그에 관련된 사실을 통한 역사적·실증적 해석이 중심이 되어 후한 말 이후 가장 널리 쓰였습니다.
《춘추좌씨전》은 노은공 원년부터 노애공 27년까지 총 255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중국 최초로 대화체 서술 방식을 사용하여 읽는 재미를 추구했습니다. 단순히 노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춘추시대 전반을 아우르는 역사를 서술했기에 역사서와 함께 문학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편년체의 또 다른 대표작은 북송의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입니다. 1065년에 영종의 명을 받들어 사마광이 짓기 시작하여 1084년에 완성된 이 책은, 주나라 위열왕이 진나라의 3경을 제후로 인정한 기원전 403년부터 오대십국 시대의 후주 세종 때인 959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자치통감》은 편년체 형식으로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으로 모두 16기 294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왕조 시대에 사마광의 명망과 더불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실제 정치를 실시하는 데 있어 참고하고 보조로 삼아야 할 책으로 제작된 목적도 있어 대표적인 제왕학 서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기전체와 편년체의 장단점 비교
기전체와 편년체는 각각 고유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전체는 특정 인물이나 주제를 정하여 집중적으로 해당 분야의 기록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에 관심을 가진 역사학자라면 이순신 장군의 출생부터 성장, 출사 이후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전체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의 자료가 내용에 따라 분류·서술되어 참고하기에 매우 긴요하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연대순의 서술이 아니라 통치자를 중심으로 각 시대의 주요한 신하와 인물의 전기, 제도와 문물, 경제 실태, 자연 현상 등을 분류하여 서술하기 때문에 시대의 특징과 변동을 유기적이고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시대에서 활동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좀더 생생하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전체는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를 파악하려고 할 때 그 사건에 관계된 인물의 전기를 모두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대가 없는 자료까지 모두 실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 흩어지거나 섞이고 중복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반면 편년체는 역사 기록을 분산시키지 않고 쉽게 기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날짜 순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편년체 사서는 단지 한 번 읽는 것만으로 사건의 전후 관계를 쉽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편찬이 용이하다는 점과 역사 기록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점도 편년체의 중요한 장점입니다.
그러나 편년체는 역사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과 연대가 정확하지 않은 자료를 싣기 어렵다는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또한 특별한 주제가 없이 모든 사건이 날짜 순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특정한 사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모든 사건을 동등한 순위로 다루기 때문에 기록이 복잡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기전체 역사서
우리나라에서 기전체는 정사를 편찬하는 기본 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려시대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입니다. 《삼국사기》는 1145년 인종 23년에 완성된 책으로, 총 50권에 이르며 본기, 연표, 잡지, 열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본기는 총 28권으로 신라본기 12권, 고구려본기 10권, 백제본기 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각각 본기로 작성한 것입니다. 잡지는 9권, 연표는 3권, 열전은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사기》 이후에 일반화된 기전체의 형식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사》가 기전체로 편찬되었습니다. 《고려사》는 세종의 명에 의해 시작되어 1451년 문종 원년에 완성된 기전체의 관찬사서입니다. 총 139권으로 세가 46권, 지 39권, 표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려사》의 편찬은 본래 편년체로 서술된 《고려국사》가 기전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편찬체재를 기전체로 하자는 논의가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세종 20년 3월의 일로, 당시 경연에서 승지 허후가 《사기》의 체재를 본받아 기전체로 편찬할 것을 청했습니다.
《고려사》는 《삼국사기》와 달리 본기가 세가로 명명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대명관계와 주자학적 명분론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명나라의 책봉을 받아 제후국 체제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고려의 왕을 제후의 지위인 세가로 편성한 것입니다.
16세기 말 오운의 《동사찬요》, 17세기 후반 허목의 《동사》, 18세기 후반 이종휘의 《동사》 등도 기전체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기전체는 한국 역사 편찬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의 편년체 역사서
우리나라의 편년체 역사서로는 《삼국사절요》, 《고려사절요》, 《동국통감》,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습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1392~1863)의 역사를 날짜 순으로 기술한 편년체 사서로, 세계 최대 규모의 편년체 역사 기록물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기본적으로 편년체를 사용했지만, 세종 실록처럼 임금의 재위 기간이 길고 사료가 너무 방대해서 편년체로는 도저히 다 수용할 수 없을 경우에는 세종실록지리지처럼 다른 방식을 조금씩 혼합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실록오례, 세종실록지리지, 세종실록악보, 칠정산 내외편이 별도로 포함되어 있어 편년체 사서와 기전체 사서가 혼합된 듯한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고려사절요》는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 외 28인이 고려시대 전반을 편년체로 정리한 역사서입니다. 《고려사》가 완성된 지 5개월여 만에 완성하였으며, 대체로 《고려사》를 요약한 형태입니다. 1452년 문종 2년에 김종서가 《고려사》를 요약하여 만든 것으로 35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국통감》도 대표적인 편년체 역사서로, 조선 전기에 편찬된 우리나라 통사입니다. 이처럼 편년체는 조선시대에 널리 활용되었으며, 특히 실록과 같은 공식적인 역사 기록에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기전체와 편년체의 상호 보완성
기전체와 편년체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역사 공부는 기전체와 편년체의 총합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폭넓고 깊이 있는 내용 체계가 잡히고, 보다 구체적이면서 다각적으로 당대 역사 해석이 가능하며 기저에 깔린 사상이나 문명의 이해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측면에서 편년체와 기전체는 모두 기록을 하는 방식을 구분하는 것이며, 서로의 방식을 보완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 연구에서는 이 모든 기록의 방식들이 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만큼 꼭 필요한 방식입니다.
기전체는 인물 중심의 종합적 역사 서술 방식으로 특정 분야에서 심층적인 이해와 몰입도를 가능하게 합니다. 반면 편년체는 연대순으로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특정 기간 동안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파악하는데 용이합니다. 두 방식을 함께 활용할 때 역사에 대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기전체와 편년체의 역사적 의의
기전체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시작되어 동아시아 역사 편찬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사기》의 신뢰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데, 20세기에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문에 나타난 상나라 왕들의 이름과 순서가 《사기》의 기술과 거의 일치하여 신뢰도를 증명해주었습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쓴 목적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원대한 이상과 포부는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총망라하여 서술함으로써 자신 또한 이 분야에서 경지를 이루겠다는 야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편년체의 대표작인 《자치통감》은 실제 정치를 실시하는 데 있어 참고하고 보조로 삼아야 할 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제왕학 서적으로 여겨져 왔으며, 지금은 산일되고 없는 사마광 당시까지 전해지던 사료를 적지 않게 수록했기에 유력한 사료로 주목받습니다. 한국의 역사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기》와 《자치통감》을 비교해보면, 《사기》는 기전체를 대표하는 역사서이고 《자치통감》은 편년체를 대표하는 역사서입니다. 《사기》에는 정사와 야사가 섞여 있어 문학적으로 표현되었다면, 《자치통감》은 허무맹랑한 야사나 민담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오로지 신뢰할 수 있는 사실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자치통감》은 《사기》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과관계가 굉장히 뚜렷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와 활용
기전체와 편년체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 서술 방식에 그치지 않고 현대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전체는 인물 중심의 서술 방식으로, 전기나 인물 사전과 같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위인전이나 인물 평전 등이 기전체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편년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기나 여행처럼 시작, 중간, 끝이 명확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적합합니다. 현대의 연대기나 일지, 타임라인 형식의 기록들이 편년체의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시간순으로 정렬되는 뉴스나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도 넓은 의미에서 편년체의 원리를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기전체와 편년체의 관점을 모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 인물이나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할 때는 기전체적 접근이 유용하고, 시대의 흐름과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자 할 때는 편년체적 접근이 효과적입니다. 두 방식을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할 때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기전체와 편년체의 편찬 원칙
기전체의 편찬에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본기에서는 정통성을 가진 국가의 역사를 기록하며, 편년체로 기록됩니다. 정통성의 여부는 역사가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았는데, 《사기》에는 독자적인 기준으로 본기를 결정하여 항우나 여태후가 본기로 기록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세가에서는 제후국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역시 편년체로 기록됩니다. 사마천은 "하늘의 별자리인 28수가 북극성 주위를 운행하고, 수레의 30개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을 향해 모이듯이 하늘의 운행은 영구히 멈추지 않으며, 군주를 보필하는 수족으로서의 신하는 성좌나 바퀴살과 같다"고 하여 세가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열전에 대해서는 "바른 것을 북돋우고, 재능이 뛰어나며,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잃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우는 사람들을 위해 열전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열전은 기전체에서 본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특히 중국의 정사는 본기보다 열전을 더 중요하게 여겨 열전의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편년체의 편찬 원칙은 역사적 사실을 날짜 순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연도 및 날짜를 기록하는 방법에 따라 형식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전한의 무제가 연호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왕의 재위년이 연도를 세는 기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재위년 및 연호와 별도로 육십갑자가 연도의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일반적으로 재위년 또는 연호와 육십갑자가 병기됩니다.
기전체와 편년체의 문화적 영향
기전체와 편년체는 동아시아 역사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에서는 《사기》부터 《청사고》까지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를 서술하는 기본 체재가 되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려 초기에 지었다는 《삼국사》가 현재 전해지지는 않지만 단군본기나 동명왕본기 등이 담겨 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기전체로 서술되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후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기전체로 서술되면서 한국 역사 편찬의 전통이 확립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기본적으로 편년체로 기록되었지만, 이는 당대의 기록이라는 특성상 편년체가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역사를 기전체로 나타낸 정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방대한 기록들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전체와 편년체는 역사 서술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큰 가치를 가집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유려한 필치와 문체로 역사서로서의 가치 외에 문학으로서도 큰 가치를 가진 서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춘추좌씨전》도 고전 문장의 모범이 되었고 읽는 재미를 추구하여 역사서와 함께 문학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처럼 기전체와 편년체는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을 넘어 동아시아 문화와 사상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기록하느냐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관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전체와 편년체라는 두 가지 방식은 각각의 장점을 살려 동아시아 역사 문화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만들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