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생명체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충격적이고 신비로운 존재가 바로 '연가시(Gordius aquaticus)'입니다. 이 기생충은 사마귀를 비롯한 곤충들의 몸에 기생하면서 숙주의 행동을 완전히 조종하여 자신의 번식을 위해 숙주를 죽음으로 이끄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가시의 기본적인 특징과 분류
연가시는 동물계 유선형동물문(Nematomorpha) 연가시강(Gordioida)에 속하는 기생성 무척추동물입니다. 이들의 학명은 Gordius aquaticus이며, 몸체의 앞쪽 끝에서 뒤쪽 끝까지 두께가 거의 동일하고 가늘며 뿔 껍질이 두꺼워서 구부릴 때 철사 모양과 같기 때문에 '철선충(铁线虫)'이라고도 불립니다.
연가시의 외형은 매우 독특합니다. 성체의 몸 길이는 대략 10cm에서 100cm까지 다양하며, 길게는 1m까지 자라기도 합니다. 폭은 1-3mm 정도로 매우 가늘고, 머리 끝은 뭉툭하며 0.5-1mm 길이의 담황색 영역이 있습니다. 벌레의 표면에는 작은 유돌기가 많고, 수컷의 꼬리는 말리고 끝이 갈라지며, 암컷의 꼬리는 짧고 끝이 뭉툭한 특징을 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22속(genus), 350여종(species)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7여종의 의심종을 제외하면 약 8종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약 326종이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2,000여 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연가시의 복잡한 생활사
연가시의 생활사는 매우 복잡하고 흥미로운 과정을 거칩니다. 이들의 생애주기는 물속에서 시작되어 여러 단계의 숙주를 거치며 완성됩니다.
교미와 산란
연가시는 암수딴몸으로 양성생식을 합니다. 교미는 봄, 이른 여름, 가을에 하며 수컷이 암컷을 뚤뚤 휘감고 교미합니다. 일부 종의 경우는 단체로 모여서 교미를 하는데, 이때의 모습은 마치 알렉산더의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이 마구마구 꼬여있는 모습을 하게 됩니다.
교미 후 암컷은 30-60cm의 기다란 아교질 끈 속에 알을 낳습니다. 교미를 한 후, 빠르게는 2일에서 늦게는 15일 정도의 시간에 연가시는 알을 낳는데, 보통 낙엽이나 돌, 나뭇가지 등에 난괴(egg mass)의 형태로 아주 많은 수의 알을 붙입니다. 한 마리의 암컷이 수백만 개에서 많게는 2천만 개의 알을 낳기도 합니다.
유충 단계와 중간숙주
부화한 유충은 식물이나 물가의 적당한 기질에 포낭을 형성합니다. 알에서 갓 부화한 유생(preparasitic larva)은 길이 75㎛ 정도이며, 성체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유생의 몸은 presoma(preseptum)과 postseptum(body)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presoma의 앞부분에는 환상의 가시열 돌기를 가집니다.
물속을 떠다니던 연가시의 유충들은 장구벌레 같은 작은 물속 곤충의 먹이가 됩니다. 장구벌레는 모기의 유충인데, 연가시의 유충은 장구벌레의 장세포 안에서 포낭 상태로 지내며 숙주가 자라서 물밖으로 나가기를 조용히 기다립니다.
최종 숙주로의 이동
하루살이 유충 등 부적합 기주가 포낭을 삼키면 퇴화하였다가 다시 대기기주(가성기주, Paratenic Host)의 조직에서 포낭이 됩니다. 그리고 이들 대기기주를 최종 기주인 포식충 등이 먹게 되면 포낭은 분해되고 기생생활이 계속됩니다.
사마귀 등 기주가 이들 포낭을 직접 섭취하면 소화관에서 포낭은 퇴화하고 유충은 체강에 들어가 발육을 계속하며 기생합니다. 기생한 연가시는 기주내의 주변조직과 중요한 영양을 취하며 발육을 계속하여 기주 내에서 단단한 사리를 틉니다.
사마귀와 연가시의 관계
사마귀는 연가시의 가장 대표적인 최종 숙주 중 하나입니다. 연가시는 드디어 지상으로 진출한 후, 운없는 모기가 사마귀의 밥이 되면서 사마귀 속으로 다시 새로운 숙주의 몸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사마귀의 장속에 자리잡고 성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긴털흑연가시(Chordodes japonensis)'가 사마귀에 기생하며, 왕사마귀에서는 '왕사마귀연가시(C. fukuii)'도 발견됩니다. 사마귀와 왕사마귀의 긴털흑연가시 기생율은 각각 27.0%와 10.7%였으며, 사마귀 1기주 당 긴털흑연가시의 기생수는 1~9마리였습니다.
연가시 기생은 사마귀의 소화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생식계에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왕사마귀와 사마귀 암컷의 보란율은 기생당하지 않은 기주의 경우 63.7%였으나, 기생당한 기주는 2.6%에 불과했습니다.
연가시의 숙주 조종 메커니즘
연가시가 가진 가장 놀라운 능력은 바로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성장을 마친 연가시는 물에서 알을 낳기 위해 숙주를 물에 빠트립니다. 연가시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것일까요.
신경조절물질의 분비
연가시는 사마귀 등 곤충을 물가로 유인하는 신경조절물질을 분비해 자살을 유도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가시가 곤충 고유의 신경전달물질과 비슷한 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에 곤충은 마치 자신이 의도해서 물가로 이동한다고 착각합니다.
성체가 된 철선충류(연가시)는 숙주의 뇌에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여 숙주가 된 곤충이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하게 한 후 몸체를 뚫거나 빠져나옵니다. 연가시는 여치, 메뚜기, 사마귀, 귀뚜라미 같은 곤충의 몸속에서 기생하다가 짝짓기 때가 되면 신경조절물질로 숙주 곤충의 뇌를 조종해 물가로 가게 합니다.
유전자 수평 전달의 비밀
최근 과학자들이 연가시가 가진 숙주를 조종하는 능력의 비밀을 풀었습니다. 사토 타쿠야 일본 고베대 교수 연구팀은 연가시가 사마귀와 같은 숙주의 움직임을 조작할 수 있는 유전자 수천 개를 가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연가시가 지닌 이 유전자들을 숙주로부터 직접 획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mRNA 발현량을 관찰한 결과 연가시는 사마귀를 조종하는 동안 아주 많은 유전자에서 발현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3100개 이상의 유전자 발현량이 증가했습니다. 이 중 1400개 이상의 유전자는 사마귀의 유전자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연구진은 이것을 통해 연가시가 유전자 수평 전파라는 방법으로 사마귀의 유전자를 훔치고 있다는 것을 추측했으며, 이 추측은 연가시에서 사마귀의 유전자와 매우 높은 유사성을 가진 1420개의 유전자의 발견으로 인해 입증되었습니다.
숙주의 죽음과 연가시의 탈출
뇌가 조종당하면 수영을 하지 못하는 숙주 곤충들도 물로 뛰어들어 죽게 됩니다. 사마귀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사람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처럼 거의 다이빙하는 모양이라고 합니다. 이승을 빨리 하직하고 싶다는 듯이, 발작적으로, 또는 기꺼이 물속으로 풍덩 뛰어내려 자살을 감행합니다.
성충이 된 연가시는 최종적으로 숙주인 사마귀를 조종하여, 물에 유도하여 익사시킵니다. 항문이나 상처 구멍, 입과 같은 몸의 구멍을 통해 연가시가 나와, 물속에서 번식을 시작합니다. 사마귀가 물속에서 죽어갈 때 연가시의 탈출이 시작되며, 연가시는 물속에서 사마귀의 몸에 구멍을 뚫고 꿈틀거리며 빠져나와 맑은 물에서 살다가 짝을 찾아 알을 낳고 죽습니다.
연가시가 빠져나간 곤충은 자기 몸보다 더 긴 연가시가 나오면서 대부분 빈사상태에 이르게 되고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4cm 정도 되는 사마귀나 여치 뱃속에서 지름 0.7~1mm 정도에 길이가 20cm 정도 되는 연가시가 두어 마리까지 나오는 장면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뱃속에 저 긴 것이 다 들어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연가시의 생태학적 의미
연가시는 주로 깨끗한 1급수 청정 지역에 사는 생명체로, 환경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종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주로 민물 또는 물기 많은 토양에 서식하며, 보통 깨끗한 물에서 서식하지만 물가나 웅덩이, 연못, 저수지 등 물이 있는 곳이나 습기가 있는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가시가 주로 기생되는 사마귀나 여치는 주로 시골에 사는 개체들이고, 도시 공원 등지에 사는 사마귀나 여치의 감염률은 현저히 낮은 편입니다. 이는 연가시 자체가 1급수 청정 지역에 사는 생명체인 특성 때문입니다.
갈색여치나 사마귀 같은 육식곤충에게 주로 기생하는데, 특히 갈색여치는 '연가시 택시'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연가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갈색여치 등의 해충들에게 치명적인 천적이어서 이로운 생물 쪽에 속하지만, 워낙 살아가는 과정이 혐오스럽다보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편입니다.
연가시와 인간의 관계
연가시가 사람에게 기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많습니다. 인간은 연못과 연가시가 서식하는 물에서 이러한 연가시 유충을 쉽게 마실 수 있으며, 마신 후에는 요로 감염과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연가시병(nematomorphiasis)'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연가시가 우연히 사람의 토사물에서 발견된 사례는 있지만 실제로 병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기생충한테는 숙주특이성이란 게 있는데, 기생충과 숙주간에 수십, 수백만 년 동안 형성된 관계이므로 영화처럼 인간을 조종할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확인하고 있습니다.
연가시는 곤충에 기생하는 생물이라 온도와 성분까지 다른 인간의 몸속에서는 기생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냇물에 사는 민물고기도 바닷물에서는 미네랄인 염소이온(Cl-) 농도 차이 때문에 생존할 수 없듯 연가시도 사람 몸에서는 못 살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연가시를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
2012년 영화 '연가시'
연가시는 2012년 한국 영화의 소재가 되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신체에 기생하여 물에 빠져죽게 만드는 변종 연가시를 소재로 했으며, 6년 전 괴물이 살았던 그 한강에 연가시가 출몰한다는 설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영화는 '곤충에 기생하는 연가시가 변종돼 사람을 덮친다면?'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했습니다. 변종 연가시의 출현으로 도시가 쑥대밭이 되는 가운데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한 남자가 벌이는 사투를 그렸습니다. 박정우 감독은 "우연히 연가시라는 기생충에 대해 알게 됐다. 꼬리에서 연가시가 빠져나오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고 영화 제작 동기를 밝혔습니다.
대중문화 속 연가시
연가시는 영화 이후 다양한 패러디와 문화 콘텐츠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SNL코리아7'에서는 문정희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연가시'를 패러디하며 "목말라"라는 대사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처럼 연가시는 단순한 기생충을 넘어서 현대 대중문화의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연가시 연구의 현재와 미래
연가시가 어떻게 숙주인 곤충을 물가로 유인하여 자살을 이끄는지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메커니즘은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력한 가설의 하나로서 연가시가 숙주인 곤충의 신경계에 작용하는 특정 물질을 분비하여, 곤충이 갈증을 느끼게 만드는 이론이 있습니다. 연가시가 분비하는 단백질이 곤충이 원래 지닌 신경전달물질과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는 연가시가 가진 숙주 조종 능력의 유전학적 기반을 밝히는 데 집중되고 있습니다. 연가시가 한 번에 많은 양의 유전자를 훔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훔친 유전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되어 숙주를 세뇌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된 것이라고 연구진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론: 자연의 신비로운 조종자
연가시는 자연계에서 가장 신비롭고 놀라운 기생충 중 하나입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숙주 조종 능력은 단순히 기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생화학적 메커니즘과 유전학적 진화의 결과물입니다. 사마귀와 연가시의 관계는 자연계의 먹이사슬과 생태계 균형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과학자들에게는 기생충학과 행동생물학 연구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연가시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들의 숙주 조종 메커니즘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신경과학과 행동학 분야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연가시는 환경 지표종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므로, 생태계 보전과 환경 모니터링에도 활용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생물입니다.
비록 외관상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철사 같은 모양의 작은 생물이지만, 연가시가 보여주는 생존 전략과 진화적 적응은 자연의 무한한 창조력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연가시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자연계의 더 많은 비밀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