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클로스(Chuck Close, 1940-2021)는 미국의 저명한 화가이자 시각 예술가로, 대형 포토리얼리스틱 초상화로 유명합니다. 그의 작품은 사진을 기반으로 한 정교한 그리드 기법을 통해 인간 얼굴의 미세한 결점까지 확대 재현하며, 현대 미술의 경계를 넓혔습니다. 이 글에서는 척 클로스의 생애, 예술 여정, 독창적인 기법, 그리고 그의 유산에 대해 자세히 탐구하겠습니다.
초기 생애와 어린 시절의 고난
척 클로스는 1940년 7월 5일, 미국 워싱턴주 몬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레슬리 더워드 클로스는 척이 11세 때 사망하였고, 어머니 밀드레드 와그너 클로스는 유방암으로 투병 중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심한 난독증(dyslexia)을 앓았으며, 이는 학교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신경근육 질환으로 인해 발을 들기 어려워 스포츠 활동이 제한되었고, 6학년 때 신장 감염으로 거의 1년 동안 학교를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학습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클로스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4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5세 생일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젤과 오일 페인트 세트를 선물받아 본격적으로 미술에 몰두했습니다. 14세에 시애틀 미술관에서 잭슨 폴락의 추상 표현주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는 그의 예술적 각성을 촉발했습니다. 폴락의 드립 페인팅을 본 후 불과 며칠 만에 자신의 기존 작품에 페인트를 뿌리며 실험을 시작했다고 회상합니다. 이러한 초기 경험은 클로스가 추상에서 구상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교육 배경과 예술적 전환
클로스는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에버렛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1962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미술학 학사(B.A.)를 취득했습니다. 1961년 예일 여름 미술 학교 장학금을 받았고, 1964년 예일 대학교 미술 및 건축 학교에서 미술 석사(M.F.A.)를 받았습니다. 예일에서 그는 브라이스 마든, 비자 셀민스, 리처드 세라 등 유명 예술가들과 함께 공부하며 추상 표현주의에 심취했습니다. 윌렘 드 쿠닝의 영향을 받아 숙련된 붓놀림으로 세대를 이은 추상 표현주의자가 될 운명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67년, 그는 예술을 스스로 어렵게 만들기 위해 붓을 버리고 사진 기반의 구상 초상화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도구를 버렸다"는 그의 결정으로, 익숙하지 않은 기법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돌파구를 모색한 결과였습니다. 1964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후,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매사추세츠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이 전환을 구체화했습니다. 1967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소호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적 배경은 클로스가 포토리얼리즘의 선구자가 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예술 스타일과 독창적인 기법
클로스의 작품은 주로 가족, 친구, 동료 예술가들의 대형 초상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진을 기반으로 한 포토리얼리즘(hyperrealism)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얼굴 인식 장애(prosopagnosia)를 앓고 있었는데, 이는 초상화를 선택한 동기 중 하나로 꼽힙니다. 사진을 그리드로 나누어 캔버스에 확대 재현하는 그의 방법은 카메라의 기계적 결점(흐림, 왜곡)과 인간 얼굴의 결점(혈관 파열, 모공 확대)을 그대로 포착합니다. 초기 작품에서는 사진에 그리드를 덧씌운 후, 비례 그리드를 캔버스에 옮겨 에어브러시로 아크릴 페인트를 적용하고 면도날로 잉여물을 긁어내어 음영을 재현했습니다. 1968년 완성된 <빅 셀프 포트레이트(Big Self Portrait)>는 그의 얼굴을 273cm × 212cm 크기로 흑백으로 그린 첫 작품으로, 4개월 이상 소요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워커 아트 센터에 의해 1969년 인수되어 그의 경력을 가속화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컬러를 도입하며 실험을 확대했는데, 인쇄 과정 시뮬레이션을 위해 시안, 마젠타, 옐로우 색상을 층층이 적용했습니다. "핑거프린트 시리즈(fingerprint series)"에서는 검지와 엄지에 잉크를 묻혀 캔버스에 찍어 미묘한 회색 톤을 만들었으며, 가까이서 보면 지문 무늬가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환상적인 전체상을 형성합니다. 그는 잉크, 그래파이트, 파스텔, 수채화, 지문 페인팅, 판화(메조틴트, 에칭, 우드컷), 콜라주, 폴라로이드 사진, 다게레오타입, 자카드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매체를 마스터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잉크젯 프린터 개발에 영감을 주었으며, 그는 "포토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며 "마크 메이킹(mark-making)"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의 작품은 추상 표현주의, 팝 아트,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독자적인 그리드 시스템으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명 작품과 시리즈
클로스의 대표작으로는 1969년 필립 글라스(Philip Glass)의 초상 <필(Phil)>이 있습니다. 이 흑백 작품은 1977년 수채화, 1978년 스탬프 패드와 지문, 1982년 회색 수제 종이로 재해석되었습니다. <마크/핑거프린트(Mark/Fingerprint)>는 1970년대 초 마크 그린월드(Mark Greenwold)의 초상으로, 빨강·노랑·파랑 잉크 지문을 사용했습니다. 1970년대 컬러 시리즈에서는 <존(John)> (1971, 430만 달러 낙찰)과 <귄(Gwynne)> (1982)이 유명하며, 그의 작품은 종종 2-3m 크기로 monumental한 느낌을 줍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타일 모자이크나 타원형·타원 모양의 색상 타일을 사용한 추상적 그리드로 전환했는데, 가까이서 보면 각 타일이 추상화이지만 멀리서 보면 얼굴의 역동적 해체를 보여줍니다. 태피스트리 시리즈는 2003년 필립 글라스의 흑백 초상으로 시작해 케이트 모스, 신디 셔먼, 루 리드,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을 묘사했습니다. 이들은 도널드 파른스워스와 협업해 17,800개 이상의 색상 실로 직조되었으며, 멀리서 보면 전체상, 가까이서 보면 개별 실이 드러납니다. 2010년 뉴욕 지하철 86번가역을 위한 190㎡ 모자이크 위촉, 2014년 <밸니티 페어> 헐리우드 에디션의 20인 폴라로이드 초상(로버트 드 니로, 스칼렛 요한슨 등), 2016년 폴 사이먼 앨범 <스트레인저 투 스트레인저> 커버 눈 부분 등이 그의 위촉 작품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의 초상화가 예술·문화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더 이벤트(The Event)"와 장애 극복
1988년 12월 7일, 클로스는 뉴욕에서 예술가 시상식에 참석 중 가슴 통증을 느끼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척추 동맥 폐색으로 인해 목 아래 전신 마비가 되었으며, 이는 "더 이벤트(The Event)"로 불립니다. 어린 시절 신경근육 문제와 유사한 증상이었으나, 그는 재활 치료를 통해 팔에 약간의 움직임을 회복했습니다. 이후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손목에 붓을 고정하는 장치로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조수가 만든 저해상도 그리드 사각형으로 대형 초상화를 제작했으며, 멀리서 보면 픽셀화된 포토리얼리티를 추구했습니다. 마비 이전부터 그는 이미 과도한 세밀함에 자제된 제한을 두었는데, 지문이나 불규칙 종이 조각 같은 어려운 매체로 사실성을 달성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삶과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장애인 예술가에 대한 책 크로니클스 오브 커리지: 베리 스페셜 아티스트스에서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2015년 전두측두엽 치매 진단을 받았으나, 이는 그의 후기 행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전시와 공공 활동, 논란
클로스의 첫 개인전은 1967년 매사추세츠 대학교에서 열렸으나, 남성 누드 작품으로 인해 폐쇄되었고 ACLU의 도움으로 법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970년 뉴욕 바이커트 갤러리 전시로 명성을 얻었으며, 1972년 MoMA 프로젝트 전시, 1979년 휘트니 비엔날레 등에서 주목받았습니다. 1998년 MoMA 대규모 회고전(커크 바르네도 큐레이션)은 헤이워드 갤러리(런던) 등으로 순회했습니다. 2003년 <척 클로스 프린츠: 프로세스 앤 콜라보레이션>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서 전시되었고, 2007년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회고전은 아헨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어졌습니다. 2013년 화이트 큐브(런던)와 시드니 현대 미술관, 2016년 에버렛 샤크 아트 센터, 2021년 모스크바 게리 타틴시안 갤러리 <인피니트>가 그의 마지막 생전 전시입니다. 그는 빌 클린턴(2006 초상), 버락 오바마(2012 사진) 등 공인 초상도 그렸으며, 2000년 국가 예술 훈장, 스코헤건 미술 메달 등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성희롱 혐의(2001-2013, 젊은 여성 모델 대상)가 제기되어 2018년 내셔널 갤러리 전시가 취소되었습니다. 클로스는 사과했으나 부인했으며, 그의 치매가 원인일 수 있다는 의학적 의견도 나왔습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예술·인문학 위원회에서 사임했습니다.
후기 작품과 유산
후기 작품에서 클로스는 디지털 이미지와 워터컬러 프린트를 탐구했습니다. 매그놀리아 에디션과의 협업으로 10,000개 이상의 손으로 그린 마크를 스캔해 그리드 형식으로 재배치한 워터컬러 프린트 시리즈를 만들었으며, 이는 "빛과 색상, 물의 정밀함"을 강조합니다.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 런던 테이트 모던,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 센터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021년 8월 19일, 뉴욕 오션사이드에서 울혈성 심부전으로 8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클로스의 유산은 포토리얼리즘을 넘어 사진과 회화의 융합, 장애 극복을 통한 창작 지속성에 있습니다. 그의 혁신은 현대 초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