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 36년간 이란의 최고지도자로 군림하며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를 넘어 이란의 정치, 군사, 종교를 아우르는 실질적인 국가 최고 권력자로서 대통령보다 위에 있는 헌법상 최고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호메이니의 후계자로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를 대표하는 인물인 하메네이는 반서방·반이스라엘 노선을 견지하며 이란을 중동의 강국으로 발돋움시켰다. 본 글에서는 하메네이의 생애와 정치 철학, 그리고 그가 이란과 중동 정세에 미친 영향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 생애와 교육 배경
출생과 가정환경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는 1939년 4월 19일(일부 자료에서는 7월 17일) 이란 동북부 호라산 지역의 성도인 마슈하드에서 아제르바이잔계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슈하드는 이슬람 시아파의 가장 성스러운 도시로 꼽히는 곳으로, 시아파 8대 이맘인 알리 레자의 성묘가 있는 종교적 중심지였다. 이러한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한 하메네이는 어린 시절부터 마슈하드의 신학교에 재학하면서 이슬람교 신학을 전공했다.
종교 교육과 호메이니와의 만남
하메네이는 1957년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로 이주했지만, 1958년 이란의 종교 중심지인 쿰으로 다시 이주했다. 쿰에서 그는 훗날 이란 이슬람 혁명의 지도자가 될 루홀라 호메이니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이슬람주의를 제창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만남은 하메네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는 호메이니의 가장 충실한 제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반정부 활동과 투옥
1963년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이 주도한 백색혁명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다가 구속되기도 했던 하메네이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 쿰 신학교와 마슈하드 신학교 간 연락책을 담당하면서 반샤 운동을 전개했으며, 샤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체포되고 투옥되는 경험을 겪었다.
이슬람 혁명과 정치적 부상
혁명 참여와 이슬람공화당 창당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당시 하메네이는 호메이니의 핵심 측근으로서 혁명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담했다. 혁명 직후 그는 이슬람공화당 창설 과정에 참여했으며, 모함마드자바드 바호나르, 모함마드 베헤슈티,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압돌카림 무사비아르다빌리와 함께 공동 창당주가 되었다. 이슬람공화당은 호메이니의 혁명을 돕기 위해 창당된 정당으로, "강력한 교권주의, 호메이니를 향한 충성심, 자유주의 운동에 관한 강한 적대심, 혁명기구를 향한 지지"를 특징으로 했다.
혁명 후 주요 직책
이슬람 혁명 이후 하메네이는 혁명평의회 의원으로서 국방부 차관, 이슬람 혁명 수비군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80년 1월 14일에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였던 루홀라 호메이니에 의해 테헤란 금요 예배 이맘으로 임명되었고, 1980년 5월 28일부터 1981년 10월 13일까지 이란 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암살 시도와 '살아있는 순교자'
1981년 6월 27일, 하메네이는 테헤란에 위치한 아부자르 모스크에서 강연을 하던 도중 녹음기 앞에 설치되어 있던 폭탄이 폭발하면서 팔, 성대, 폐에 큰 부상을 입었다. 이는 이란 인민무자헤딘기구의 암살 시도였으며, 하메네이는 이 사건에서 살아남았지만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오른팔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살아있는 순교자'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이는 그의 정치적 권위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 시절 (1981-1989)
대통령 선출과 재선
1981년 10월 13일부터 1989년 8월 3일까지 하메네이는 이란의 제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1981년 선거에서 95.01%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1985년 재선에서도 87.90%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마침 마흔을 갓 넘겼던 하메네이는 고위 신학자 그룹의 추천을 받아 사상 첫 신학자 대통령에 선출된 것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기간의 리더십
하메네이의 대통령 재임 기간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계속된 이란-이라크 전쟁과 겹쳤다. 그는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이란군의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활동했으며, 전쟁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시기 그는 호메이니의 신뢰를 받으며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북한과의 관계
1989년 5월 14일 하메네이는 대통령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과 이란은 그의 방문을 기념하여 매년 '조선과 이란 친선 주간'을 정해 사진 전시회와 영화감상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하메네이가 국제 무대에서 반서방 연대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최고지도자 선출과 권력 장악
호메이니의 후계자 선출
1989년 6월 3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사망한 후, 하메네이는 6월 4일 긴급소집된 전문가회의에서 8시간의 숙의 끝에 호메이니의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당시 하메네이는 49세로,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이는 사망하기 석 달 전 호메이니가 최고 지도자 자격 요건에서 이슬람 시아파 신학자의 최고 지위인 '그랜드 아야톨라' 제한을 없앤 덕분이었다.
권력 기반 구축
최고지도자가 된 하메네이는 조용히 권력 기반을 굳혔다. 그는 측근들을 임명해 입법·사법부를 장악했고, 정부 내 주요 직위마다 자기 사람을 심었다. 또한 300만 바시즈 민병대와 12만 혁명수비대도 적극 활용했다. 2005년에는 정치적으로 무명에 가깝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를 대통령 선거에 내보내 최대 정적인 라프산자니까지 꺾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메네이의 정치 철학과 통치 스타일
이슬람 신정체제의 수호
하메네이는 호메이니가 수립한 이슬람 신정체제를 철저히 수호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그는 이슬람 혁명의 정신을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이슬람 교리와 혁명의 가치를 강조했다. "혁명의 정신을 잃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준다.
보수 강경파의 지지 기반
하메네이는 강경파와 보수파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다. 그는 서방의 문화를 비판하며, 그것이 이슬람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왔다. 종종 서방 문화가 이란 사회에 침투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려 한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체제 생존을 위한 현실주의
중동연구소의 이란 프로그램 책임자인 알렉스 바탄카는 "하메네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두 가지는 그가 매우 완고하다는 것과 동시에 극도로 신중하다는 점이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권좌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평가했다. 하메네이는 철저한 비용-편익 분석을 할 줄 아는 인물로, 그 분석은 언제나 체제 생존이라는 핵심 주제로 귀결된다.
하메네이의 권력 구조와 영향력
최고지도자의 권한
하메네이는 이란에서 가장 강력한 직위인 최고지도자로서 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문제에 대해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통령, 국회, 사법부 등 국가 주요 기관까지 감독, 통제할 권한이 있으며, 대통령 인준권을 갖고 있어 대통령 해임도 가능하다. 혁명 수비대의 주요 간부, 사법부 수장 등도 임명할 수 있다.
군사·안보 기구 장악
하메네이는 9000만 인구 이란의 행정부, 사법부, 군대를 장악하고 있다. 그는 정보기관, 언론, 종교기관, 사법부를 직접 임명하거나 통제하며, 혁명수비대(IRGC)와 IRGC의 특수부대인 쿠드스군을 통제한다. 쿠드스군은 이란의 대리세력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을 감독·지원하고 있다.
중동 지역 영향력 확대
하메네이는 중동 전역으로까지 영향력을 확장하여 이란을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에 맞서는 견제 세력으로 탈바꿈하게 했다. 레바논에서 예멘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대리 네트워크를 구성해 군사 자금을 지원하면서 자국 영토의 전쟁 없이도 영향력을 과시하며 주변국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외교 정책과 국제 관계
반서방·반이스라엘 노선
하메네이는 줄곧 반서방·반이스라엘 노선을 견지해왔다. 그는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 입장, 시리아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같은 동맹국 지원 등을 외교 정책의 특징으로 삼았다. 이러한 정책은 이란을 중동의 '저항의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핵 프로그램과 국제 제재
하메네이는 핵 프로그램에도 권한을 행사하면서 이란과 이스라엘 갈등의 중심에 섰다. 그는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용도로 계획됐다고 밝혔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군사적 목적으로 보고 있다. 하메네이는 이란의 핵개발을 방어적 권리로 주장하며, 국제사회의 제재를 '서구의 도발'로 규정해왔다.
'저항의 축' 구축
하메네이 집권 기간 이란은 적대국과 직접적 갈등을 피하면서 '저항의 축'으로 알려진 헤즈볼라, 후티 반군, 하마스 등과 군사 동맹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이란은 중동
전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세력을 구축했다.
경제 정책과 '저항 경제'
제재 하의 경제 운영
이란 경제는 제재와 내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메네이는 자주 '저항 경제'를 강조하며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자급자족을 촉진하는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서방의 경제 제재에 맞서 이란의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국가 자원의 통제
하메네이는 이란의 주요 경제 부문을 직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의 통치 아래 혁명수비대는 경제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는 하메네이 체제의 중요한 권력 기반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의 위기와 도전
이스라엘과의 갈등 격화
2025년 6월 현재 하메네이는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36년째 이란의 최고지도자로 군림하며 철권통치를 이어온 하메네이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반세기 가까이 이어온 이란의 신정체제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핵심 참모진의 상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하메네이의 핵심 군사·안보 참모들이 사망하면서 지도부 내부에 큰 공백이 생기고 전략적 오판 가능성도 커졌다. 호세인 살라미 IRGC 총사령관, 미사일 프로그램 책임자인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함장, 모하마드 바게리 참모총장, 정보기관 책임자인 모하마드 카제미 등이 사망했다.
은신과 위협
지난 13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하메네이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란 반체제 매체들은 하메네이가 가족과 함께 지하 벙커로 피신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메네이 은신처를 알고 있다고 밝혀 진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후계자 문제와 미래 전망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
하메네이 후계자로는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55)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종교학자로 활동해온 그는 혁명수비대 및 보수 강경파와 유대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즈타바는 공식적인 직함은 없지만, '최고지도자 출판사무국'을 이끌면서 주요 정책들에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는 실세로 평가받고 있다.
후계 구조의 문제점
다만 모즈타바는 공식적인 정치 경력이 없고, 권력 세습에 반발하는 여론 때문에 실제 승계가 이뤄지면 내부 갈등이 불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아파 이슬람에서는 수십 년 이상 학문적 연구와 동료의 인정을 받아야 정통성을 인정받는데, 모즈타바는 이러한 종교적 자격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전문가회의의 역할
하메네이가 사망할 경우 이란 헌법에 따라 전문가회의의 주관으로 비상 승계 절차가 개시된다. 이란의 이슬람교 율법을 심의하는 기구인 전문가회의는 최고지도자 선출 권한을 갖으며, 현재 강경파가 장악하고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문가회의는 하메네이의 후계자 세 명의 우선순위를 선정했으나, 후보자가 누군지는 극비에 부쳐졌다.
국내 정치와 사회 통제
시위 진압과 사회 통제
하메네이는 체제 유지를 위해 1999년, 2009년, 2022년 전국적 시위를 진압할 때마다 혁명수비대와 그 산하 바시지 민병대를 투입해왔다. 이들 보안군은 항상 시위대보다 오래 버텨내며 국가 통치를 회복시켰다. 최근에도 오랜 서방 제재로 인한 경제적 고통에 이번 충돌로 민간 희생자가 속출하자 내부 불안이 커지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전파
하메네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하기도 한다.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국제 사회와 이란 국민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2020년 1월 솔레이마니 장군이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후, 하메네이는 트위터를 통해 "가혹한 복수"를 다짐하며 세계에 경고를 보낸 바 있다.
하메네이에 대한 평가와 비판
지지자들의 평가
하메네이의 지지자들은 그를 이란의 독립성과 이슬람적 정체성을 수호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그들은 하메네이가 서구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위협으로부터 이란을 보호했으며, 중동에서 이란의 지위를 크게 향상시켰다고 본다. CNN은 하메네이에 대해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하나"라며 "이란을 철권통치 해왔으며, 이란 내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많은 핵 프로그램을 추진해오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싸워왔다"고 설명했다.
비판적 시각
반면 하메네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이란 외곽 지역에 사는 자흐라(가명, 32)는 "하메네이가 제거된다면 정권이 바뀐다고 예상합니다. 우리 이란 국민은 반드시 기뻐 뛰며 축하할 거예요"라고 말하며, "이슬람 공화국이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자국민을 죽여왔다"며 "모든 게 이 정권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하메네이 정권에 대한 국내 불만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결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36년간 이란의 최고지도자로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를 공고히 하고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시킨 인물이다. 그는 호메이니의 후계자로서 이슬람 신정체제를 수호하며, 반서방·반이스라엘 노선을 통해 이란을 중동의 강국으로 발돋움시켰다. 그러나 현재 그는 이스라엘과의 갈등으로 인해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핵심 참모진의 상실과 함께 정권의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
하메네이의 통치는 이란 현대사에서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하며, 그의 정책과 결정은 중동 전체의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논란이 많지만, 그가 중동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 중 한 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하메네이 체제의 미래와 후계 구도는 이란뿐만 아니라 중동 전체의 안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