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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2

공혜왕후 한씨 : 조선 성종의 원비로 덕성과 효심이 뛰어났으나 19세에 요절한 비운의 왕비 공혜왕후 한씨의 출생과 가족 배경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 韓氏, 1456년 11월 17일 ~ 1474년 5월 9일)는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정비(正妃)이자 원비(元妃)입니다. 본관은 청주(清州)이며, 휘(諱)는 송이(松伊)로 전해집니다. 그녀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권력자였던 영의정 상당부원군 한명회(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넷째 딸로, 1456년 세조 2년에 한성부 연화방(蓮花坊) 사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언니 중 한 명은 예종의 첫 번째 왕비인 장순왕후 한씨로, 두 자매가 모두 왕비가 되는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습니다.아버지 한명회는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인물로, 두 딸을 왕비로 만들며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2025. 10. 22.
재간택 : 조선의 왕비를 뽑는 치열한 궁중 서바이벌 조선시대 궁중에서 벌어진 가장 치열하면서도 숙명적인 경쟁이 바로 '재간택'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왕비를 선발하는 과정이 아니라, 한 여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조선 전체의 정치적 질서까지 좌우할 수 있는 거대한 운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날 드라마와 웹툰을 통해 재조명받고 있는 재간택의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해석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재간택의 역사적 기원과 제도적 배경재간택 제도의 시작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종이 자신의 서녀인 정신옹주를 시집보내기 위해 적합한 남자를 찾던 중, 춘천부사 이속이 "아무리 왕이라지만 궁녀의 딸에게 자신의 아들을 보낼 순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태종은 이속을 곤장 100대 매질 후 서인으로 .. 2025. 9. 2.